새사람 됨의 은혜,훈련, 그리고 성화
예수님을 내 영혼, 내 삶의 구원자로 고백하고 그리고 십자가의 보혈의 능력이 나의 온 삶을 바꾸어 놓았음을 고백하고 선언하는 것.
그것이 구원이고 신앙인의 첫걸음이다.
그리고 만나는 것이, 그렇다면 이제 나는 나의 일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 가에 대한 고민과, 그리고 그 안에서 만나는 크고 작은 어려움 들이다.
예수를 믿기 전에 가지고 있던 죄의 습관과 편견, 그리고 주변 상황들 속에서 그다지 바뀌지 않은 듯한 스스로를 보며 느끼는 절망.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한 그 자리의 그 감격도 분명히 기억하고 여전히 마음 속에는 그 기쁨이 남아 있지만 며칠 혹은 몇주만 지나도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 있는 스스로를 바라보며 절망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공동체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하며 훈련이 필요하다고 이야기를 한다. 나의 추수교회도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해 볼 문제 하나.
공동체 안에서의 삶과 훈련을 통해 우리의 신앙이 성장하는 것은 틀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훈련을 통해 우리의 삶이 치유되고 변화한다는 생각은 자칫 위험할 수 있다. 왜냐면, 우리의 삶의 변화는 십자가의 능력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이고, 훈련은 그것들을 우리의 삶속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새로운 삶이 가능하다는 것을 발견해 나가는 것인데, 그 훈련에 우리가 열심히 노력하고 따라가서 새로운 삶을 이룬다고 하면, 자칫 하다가는 우리의 노력에 의해서 새로운 삶을 이룰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는 것이다.
우리는 십자가의 공로로 이미 새로운 사람이 되었다. 우리의 본질은 변화 되었지만, 우리의 생각과 마음에 남은 죄와 저주의 흔적들은 우리를 계속 넘어지게 하기때문에 그걸 극복해 나가면서 예수님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는 것이 우리가 평생해야할 것이다.
우리가 구원을 받아 새 사람이 된 것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이다. 그리고 그 새 사람이 온전히 드러나게 되는 것도 성령에 의해서만이 가능하다. 우리가 받는 훈련의 핵심이 기도와 말씀에 있는 것은, 그것이 마치 헬스장에서 근육을 키우거나, 성공을 위해서 기술을 배우는 것처럼 우리가 어떤 노력을 기울일 때, 그 노력만큼 얻어지는 것처럼 신앙이 성장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공을 쌓는 수련에 의해서, 깊은 참선을 통한 깨달음에 의해서 우리의 믿음이 성장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기도와 말씀에 중심을 둔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가 바로 우리의 신앙의 성장의 핵심이다. 그리고 그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는 것. 그것이 바로 전부이기 때문이다. 성경구절을 외우고, 성경지식이 늘어야 신앙이 성장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믿음'이다. 기독교의 핵심이 믿음 인 것은 무얼 믿는 다는 것은 노력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떤 대상을 믿고 의지한다 것은 그 대상에 의해서 내가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말한다. 그건 지식이나 스킬의 문제가 아니라 감정을 수반한 결단과 헌신의 문제이다.
그렇다고 훈련이 불필요 한 것은 아니다. 훈련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 훈련의 목적은 하나님과 더욱 가까워 지고 그분의 뜻을 더욱 알기 위한 것이다. 이성을 사랑할 때도 그 사람에 대해서 알아야 하는 것처럼, 그리고 그 사람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고 어떻게 사랑을 표현해야 나의 사랑하는 마음을 그 사람이 느끼는 지를 알아야하는 것처럼 신앙훈련은 바로 하나님과의 마음을 나누고 관계를 더욱 깊게 하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우리의 삶의 비전으로 삼는다.
이 글은 스프링노트에서 작성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