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지식의 대통합 - 통섭
Read, Remember, Recommand / 2009/07/1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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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예종 사태를 보면서 나에게 가장 인상깊게 남은 것은 통섭(統攝:consilience)라는 단어였다. 근대 이후로 만들어진 학문들 사이의 벽을 깨고 다양한 분야의 내용을 통합적으로 연구해서 한국 예술의 지평을 넓히겠다는 당찬 포부로 진행되는 프로젝트가 아주 어이 없는 이유 - 예술에 이론이 뭐 필요하냐 - 라는 정말 몰상식한 이유로 무산시키려고 한다고 했다.
그 와중에서 만난 '통섭'이라는 단어는 나에겐 정말 매력적이었다. 커뮤니케이션과 PR을 전공이라고 생각하고 수박 겉핥기가 되지 않기 위해서 숟가락 하나 들고 파본 나에게 통섭이라는 단어는 무릎을 치게하는 단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사회과학, 특히 커뮤니케이션학은 '의사소통'이라는 매우 오지랖이 넓을 수 밖에 없는 분야를 연구하는 것이기에 필연적으로 다른 학문들과의 학제간의 협동연구가 필요한 부분이 많다. 심리학과 사회학, 정치학, 경제학, 공학, 예술, 법학 등 다양한 분야에 발을 걸치지 않으면 화자와 청자, 소통되는 컨텐츠, 소통의 채널(미디어), 소통의 맥락과 환경에 대해서 설명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푼 기대를 가지로 거금을 투자해서 책을 사서 휴가지로 가지고 왔다.
그리고 후회했다.
이 책의 내용은 '모든 학문은 과학으로 설명이 가능하다.'라는 말이다. 내가 막연히 기대했던 통섭의 개념이 다양한 학문 분야의 연구 내용들을 서로 주고 받고 이용하면서 서로간의 부족한 부분을 매워주는 상생의 개념으로, 그래서 결국은 모든 학문은 서로 통할 수 밖에 없다는 것으로 생각을 했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통섭은 과학이 발전하면 모든 것이 설명 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과학의 전지전능함이 윤리학과 종교현상에 대한, 도덕과 영적 현상에 대해서 설명할 수 있을 것이고 그것을 통제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뇌과학의 발달을 하면서 인간의 사유와 경험의 모든 것, 심지어 영혼까지 설명이 가능하다라는 생각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모든 것이 진화라는 결코 반박할 수 없는 원리에 의해서 설명된다고 말한다.
난 미안하지만 이 책의 주장에 동의 할 수 없다.
엔트로피의 증가, 카오스 이론 등 단순한 하나의 원리로 모든 것을 설명하기 어려운 복잡계의 성질을 가지고 있는 것이 바로 자연이다. 그것을 하나의 원리로 통합한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단순화이며 그러한 단순화는 필연적으로 무언가를 생략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과학이라는 것이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는 만능 해설자라고 생각할 수 없다. 우주와 생명의 기원에 대해서는 파고들어가면 갈수록 '우연히','원래그렇다'는 설명이외에 할 게 없다. 왜 원시 지구상의 무기질이 유기질의 원시 아미노산으로 결합이 되고 그것들이 어떻게 하나의 생명체로 바뀌게 되는지 설명하는 것을 확률놀이 뿐이 없다. 지구의 원시 바다에서 수없이 번개가 치고 그때마다 무기질이 결합이 되는 것을 무수히 반복하다보니 아미노산으로 결합되고 그것들이 무수히 반복되다가 어쩌다 결합을 해서 유기질로 바뀌고 그것들이 어쩌다가 반복되다 보니 생명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라는 설명 외에 할 것이 없다.
왜 그런 일이 벌어지는가, 왜 무기질이 전기 자극이 주어지면 아미노산으로 결합되는 가에 대해서 설명을 하지 못한다.
좀더 가볼까, 분자를 쪼개고 또 쪼개서 전자, 중성자, 양자, 쿼크까지 밝혀냈다. 쿼크는 무얼로 구성되어 있는지, 아니면 이 쿼크가 모든 물질의 기본 구성단위인지에 대해서 연구가 진행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내 의문은 왜 쿼크가 모여서 중성자, 양자를 이루고 그것들이 원자핵을 이루는가? 거기에 전자는 왜 결합하고 오비탈을 이루어서 각기 다른 분자적 성질을 띄게 되는가?
과학은 그래서 어린아이의 '그건 왜그래요?'의 무한 공격에 가장 약하다. 근본에 근본을 파고 들어가면 확률과 추측만 남을 수 밖에 없다.
학문의 틀에 갖혀있는 인간의 공부와 연구의 틀을 부수라는 것은 찬성하며 인간의 지식은 다양한 분야의 지식들이 통합될 때 더욱 완전해 진다는 것에는 동의한다. 그래서 우리의 옛선조들도 어느 한 분야에만 전문가가 아니라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는 Generalist를 추구했다. 그것이 선비였고 군자였다.
이 책의 저자가 똑똑한지는 모르겠으나 나를 설득할 수는 없었다.



